산과 나눈 이야기 1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에피소드 중 기억에 남는 한 에피소드를 약간의 각색을 통해 소개하려 합니다. 우리 모두 너무 삶에서 지칠 때는 좀 멀리서 바라보는 관점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자신이 빛인 걸 아는 어떤 작은 영혼이 있었다. 이 영혼은 새로 생겨나서 체험을 갈망했다. 그 영혼은 스스로 빛임을 말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빛임을 앎과 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 영혼이 생겨난 곳에는 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영혼이 다 빛나고 위대했고 아름다웠다. 문제는 그 작은 영혼은 햇빛 속의 촛불 같았다. 작은 영혼 자신이 일부인, 그 광대한 빛 속에서 그것은 자신을 볼 수 도 없었고, 자신을 ‘참된 자신’으로 체험할 수도 없었다.
이제 그 영혼은 자신을 알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지내게 되었다. 그 바람이 너무나 커서 하루는 영혼의 아빠가 말했다.
아빠 : 아이야, 네 그런 바람을 충족시키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
작은 영혼 : 아니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뭐든지 다 할 겁니다!
아빠 : 우리에게서 너를 떼내야 한다. 그러고 난 다음 자신을 어둠이라 불러야 한다.
작은 영혼 : 어둠이 뭐예요?
아빠 : 그것은 네가 아닌 것이다.
작은 영혼은 그 말뜻을 이해했다. 그래서 작은 영혼은 전체에서 자신을 떼어냈으며, 거기다 또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 일까지 해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이 영역에서 자신의 체험 속으로 온갖 종류의 어둠을 불러들이는 힘을 행사하여 그것들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 영혼은 더없이 깊은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아빠~~ , 왜 나를 버렸어요?”
우리는 종종 삶이 힘겨울 때, 깜깜하고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거 같은 기분이 들 때 마치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둠들은 내가 빛임을 알기 위해 스스로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촛불같이 귀여운 빛이 태양 앞에서는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못하지만 어두운 밤에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니 말이다. 흔히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도 물론 맞다. 그리고 비슷한 성질이 함께 있을 때 대개는 편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이나 성찰을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그 와는 다르게 “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빛과 어둠은 정말 대조적이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인지하게 되고 가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같은 것이다.
어둠 속에 존재하는 빛이 되어라. 하지만 어둠을 저주하지 마라. 그리고 자기 아닌 것에 둘러싸인 순간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말고, 그 같은 창조를 이룬 자신을 칭찬하라. 너희가 그걸 변화시키려고 애쓸 때 조차도. 그리고 가장 큰 시련의 순간에 행하는 것이 최대의 성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라. 너희가 창조하는 체험은 ‘자신이 누구인지’와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관한 진술이기에.
주변의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둘러 싸인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본인이 빛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삶은 단지 체험일 뿐인 것이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속 주인공이 부랑자 역을 맡아 세상 서럽고 더러운 일들을 당한다고 그 배우가 진짜 부랑자는 아니듯이. 우리 모두도 그렇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 한 번은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단 그 부분에서는 공평하지 않은가? 나머지는 마음가짐,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무슨 일이든 체험의 가치가 있고 기회는 늘 숨어있다. 단지 보는 눈이 부족할 뿐. 감정에 휩싸이기보다는 한 발 자국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인생에서 안 좋은 체험이 비슷하게 자꾸 일어난다면 더더욱. “안 좋은 일이 왜 자꾸 일어나지? 더럽게 재수가 없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감정적인 표현을 억누르라는 것은 아니다. 감정의 표출은 하되 미래도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도 연습이 정말 필요하다. 우리가 글씨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 몇 년의 시간이 걸리는가? 생각도 훈련을 하지 않으면 미취학 아동의 글씨체를 벗어나기 힘든 수준으로 평생 사는 것이다. 모든 사건과 일은 절대적으로 나쁘거나 절대적으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고 본다. 아무리 개 같은 상황에서라도 아주 조금의 강아지 같은 면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에 대한 프라이드를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대단한 존재이기에. 까방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모두는 까방권을 가진 존재들이다. 뭘 좀 잘못하고 제대로 일이 안 풀리더라도 스스로 너무 까지 말기를 바란다.
'마인드컨트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게슈탈트 붕괴현상 괴담 (0) | 2022.11.10 |
---|---|
플라시보 효과의 진실은? (0) | 2022.11.09 |
다중인격장애로 알 수 있는 신체변화 (0) | 2022.11.05 |
리얼리티 트랜서핑1 리뷰 (가능태, 펜듈럼, 균형력) (0) | 2022.10.21 |
시크릿-끌어당김의 법칙 (0) | 2022.10.13 |
댓글